호랑이의 정원 열두번째 뉴스레터 2021.08.27 발행 안녕하세요 <호랑이의 정원>에서 발행하는 격주 뉴스레터 <호랑이의 쪽지 12호>입니다. 기나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돌아온 호랑이의 쪽지입니다. 방학전에 BE.LETTER에 소개되어 구독자가 많이 늘었는데 저희의 쪽지를 뒤늦게 받아보게 되었네요. 예전 구독자, 새로운 구독자 모두 다 호랑이의 친구가 되신것을 환영합니다. 😀 모든 의견을 환영해요 이번호에는 호랑이의 정원에서 멀지 않은 정동에 사는 회화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답니다. 참참 다들 여름은 잘 보내신거죠? 호랑이의 식물산책 정동의 회화나무 정동길은 어느 계절을 걸어도 한적함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도로가 넓지 않아서 비교적 차량 소통도 드물기도 하고, 다양한 서울의 지층이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죠.
직장인 시절 근처에서 근무했던 저는 점심시간에 정동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저만 그런 것은 아니라서 점심 시간이면 그 일대 직장인들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나 생과일쥬스 테이크아웃컵을 한손에 들고 2-3명씩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속이 타는 듯 한모금 음료를 마신후 오전에 있던 일을 쏟아내면서 혹시나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 두리번 거리면서 조금은 경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죠. 뭔가 어느정도 경지에 오른 안정적인 직장인의 모습같아보여서요.ㅋㅋ 정동 캐나다 대사관 앞의 회화나무는 회화나무라는 이름을 낯설어 할 사람에게도 유명한 나무입니다. 정동길을 걷다보면 보행자 길에 커다랗고 아름답게 있어서 바로 눈에 띄거든요. 이 회화나무는 1976년 서울시 보호수 지정당시 520살 추정이었으니 현재는 560살이 넘었겠네요. 지금이 2021년이니 대충 어림잡아도 1460년! 조선 세조 시기에 심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회화나무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정동길에 있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로 옆에 세워진 캐나다 대사관의 노력때문이기도 하죠. 2003년, 캐나다 대사관을 지을 당시에는 회화나무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고 해요. 캐나다 대사관측은 회화나무를 위해 설계를 변경하여 건물이 나무로부터 한발짝 뒤로 물러난 곡면 형태로 디자인합니다. 나무의 뿌리가 충분히 뻗을 수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지지대를 설치하여 과거의 나무와 새로 세워진 건물이 어울리는 현재의 조화로운 모습을 만들었다고 해요. 나무와 건물사이에는 마당처럼 포근한 공간감이 생겼답니다. 커다란 회화나무 옆에 있는 조그만 세그루의 회화나무는 자식나무일까요? ![]() 회화나무를 위해 곡면 형태로 지은 캐나다 대사관 ![]()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 정동길 덕수궁 안에도 회화나무가 많이 볼 수 있답니다. 준명당과 즉조당 뒷편 숲속길과 정관헌으로 가는 길목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구석구석 있습니다. 석조전 뒤편 평성문으로 나오면 복원사업이 한창인 돈덕전을 볼 수 있습니다. 1903년 고종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예식과 외국 귀빈을 위한 연회장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진 돈덕전은 1920년 훼철된 건물입니다. 문화재청 복원보고서에 따르면 1670년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돈덕전의 회화나무를 보존하며 공사를 진행중인데요. 얼핏 본 기사에는 생육환경을 위해 자리를 옮길지도 모른다는 이식 관련 논란 기사가 있기는 한데,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기나긴 공사기간동안 나무가 부디 아무탈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 정관헌으로 가는 길목 오래된 회화나무 ![]() 공사중인 돈덕전의 회화나무 ![]() 돈덕전 앞 회화나무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 돈덕전에서 고종과 순종, 유리건판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구석구석 회화나무 오래된 회화나무는 비단 캐나다 대사관이나 덕수궁뿐만아니라 인근 지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전부를 다루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찾은 회화나무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 덕수궁 선원전 터이자 구 경기여고 자리에 홀로 남은 회화나무 ![]() 농협중앙회 앞 회화나무. 원래는 농업박물관 뒤쪽에 있던 것을 1986년에 옮겨심었다고 해요. ![]() 450년된 조계사 대웅전 앞 회화나무 ![]() 갑신정변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우정총국 회화나무 정동길의 회화나무 접근성 (덕수궁 ~ 캐나다대사관)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2번출구 앞 버스: 시청역, 시청앞.덕수궁, 프레스센터 정거장에서 도보 2분 휠체어,유아차 이용가능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 있음 콩과 식물인 회화나무(Styphnolobium japonicum)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홰나무, 회나무, 괴나무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나무는 중국에서 온 나무로 중국에서는 괴목(槐木)으로 불리는데 괴(槐)의 발음이 [huái]이므로 아마 한국어로 홰, 회화로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고 합니다. 괴는 나무 목(木)과 귀신 귀(鬼, 나무 옹이)를 합친 말인데, 그래서 회화나무를 심으면 잡귀를 쫒고 복을 가져온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네요. 내한성, 공기 오염에도 강해서 가로수로도 적합하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옛부터 가로수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네요. 회화나무는 옛부터 한중일 모두 사랑받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회화나무의 다른이름으로는 ‘학자나무’ 라고도 하는데요 이는 중국의 관직에서 온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답니다. 주나라때 조정 밖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와 아홉 그루의 가시나무를 심었는데, 세 그루의 회화나무는 우리나라의 3정승에 해당되는 삼공[三公:태사(太師), 태전(太傳), 태보(太保)]이 마주보고 앉고 좌우의 가시나무 오른쪽에는 고경(孤卿), 대부(大夫), 왼쪽에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이 앉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직을 의미하는 단어에는 괴(槐)가 많이 쓰이고 출세, 급제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해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의미로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 사는 곳, 학자, 궁궐, 서원, 향교 등 학문과 관계깊은 곳에 심었다고 합니다. 창덕궁 돈화문 안쪽에도 세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다고 하네요! (학자나무 유래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좀 지루한 설명이었나요?;;;헤헤 제가 이런걸 좀 좋아해서) 의미뿐만 아니라 회화나무는 수형이 굉장히 아름다워서 바라보는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바람에도 잘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한 둥치에 하늘높이 뻗어있는 수많은 가지, 그 가지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는 나뭇잎은 어쩐지 그리운 과거를 생각하게 하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는 현대인이 오래된 느티나무같은건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는데도 커다란 느티나무를 보면 향수에 잠기듯 중국에서는 동네어귀에 있는 회화나무가 고향의 상징처럼 여겨진다고 해요. 8월이면 꽃이 피는데 여름철 회화나무 아래에 가면 조용히 떨어지는 꽃을 감상할 수도 있어요. 콩과 식물이므로 콩 꼬투리같은 열매가 맺히는데 엄청 귀여워요! 회화나무를 만나면 고개를 들어 잎사귀 사이 숨은 귀여운 열매를 꼭 찾아봐주세요. ![]() 회화나무 잎 ![]() 아까시나무 잎(회화나무의 잎과 유사) ![]() 회화나무꽃 출처: 국립수목원 ![]() 회화나무 열매 출처: 국립수목원 회화나무가 바라보는 세상 회화나무는 작은 묘목을 심어도 금방 자라는 속성수입니다. 대부분의 속성수는 수명이 길지 않은데 반해 회화나무는 수명이 매우 긴 노거수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든 각 지역마다 오래된 회화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자료를 찾다보니 각 지역마다 어디든 전설 한개쯤은 가지고 있는 회화나무가 있더라구요. 지역명+ 회화나무로 검색해보세요.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회화나무가 다가옵니다. 우리가 심연을 바라볼때 심연도 우리를 바라본다는 말처럼 울창한 회화나무 아래서 나무를 바라보며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에 있던 회화나무를 소개합니다. 나무는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볼까요? 🌳 서산, 해미읍성의 호야나무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라고 불리는 서산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는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조선시대 해미읍성 옥 앞에 자리하고 있는데, 서울의 절두산 성지와 더불어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가 죽임을 당한 곳중 하나랍니다. 이 회화나무에 천주교 신자들이 묶여서 고문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나뭇가지에 사람들을 매달았던 흔적이 남아있다고도 전해지기도 합니다.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출처: 문화재청 🌳 광주, 구 전남도청 앞 회화나무 5.18 민주화운동당시 계엄군에 맞서던 시민들의 항쟁 본부였던 도청앞에 있던 회화나무는 초소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도시개발로 많은 나무들이 사라졌지만 꿋꿋히 도청앞을 지키던 회화나무는 2012년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뿌리가 뽑히고 2013년 그 생을 마칩니다. 그렇지만 한 시민이 2008년경에 이 회화나무의 씨앗에서 싹튼 묘목을 주워 잘 기르고 있었다고해요. 회화나무가 죽은 것을 안타까워하던 광주시민을 위해 자식나무를 기증합니다. 산림청의 DNA 조사결과 모계관계가 확인되었다고해요! 😮 새로운 회화나무는 고사한 엄마나무와 함께 아시아문화전당 옆에 마련된 회화나무 숲에서 함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삶은 계속 이어지는 걸까요? ![]() 전남도청 회화나무, 1999년, 출처: 광주광역시 시청각자료실 ![]() 뿌리뽑힌 회화나무, 2013년 출처: 광주드림 (2013.05.29) 🌳 안동, 도산서원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학자들이 사랑하던 나무로 서원과 향교에 유독 많은 편인데 도산서원에도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었답니다.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그의 뜻을 기려 1574년에 설립된 서원입니다. 1983년에서 2007년까지 사용되었던 천원 지폐의 뒷면에도 회화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2001년에 노화로 인해 400~500살로 추정된 회화나무는 죽었는데 당시 꽤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해요. 죽은 회화나무가 아니라 같은 지폐 속 등장하는 ‘금송’이 이슈가 됩니다. 금송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1970년 도산서원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심은 것인데 갑자기 금송이 일본왕실의 상징이라는 점이 부각됩니다. 아마도 옛부터 있던 회화나무는 말라죽고 일본왕실의 상징인 금송이 튼튼하게 잘 자라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듯합니다. 이 논란을 통해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이 심은 금송은 이미 죽고 당시 안동군수가 같은 수종을 옮겨 심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 (제가 생각하기엔 약간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 같은데🤔) 결국 2018년 안동시청은 50년간 이곳에서 자란 금송을 서원 밖으로 옮겨 심고 그 자리에 이황이 좋아하던 매화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자매품: 충남 아산 현충사와 금산 칠백의총에도 1970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심은 금송이 있어 결국 퇴출되었다고 합니다. 구 천원권에 그려진 회화나무(초록)와 금송(빨강) ![]() 고사한 뒤 그대로 남아있는 회화나무 출처: 연합뉴스 (2011.04.10) ![]() 2018년 도산서원밖에 쫓겨난 금송 출처: news1 (2018.11.29) 남쪽 나뭇가지에 걸린 꿈 자려고 누우면 생각이 많아지는 밤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책하게 되는 날도 있고, 아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만큼 절망적인 순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에 대한 빅데이터가 쌓여서 불쑥 솟아나는 기분에 빠지기 전에 초컬릿을 더 먹자라던가, 재미난 드라마를 보자 같은 나만의 대응할 무언가가 생기기도 하지만 어쩔 도리없이 기분에 사로잡히는 날도 있답니다. 중국 당(唐)에 순우분(淳于棼)은 어느날 술에 취해 집 앞 나무에서 잠이 듭니다. 그런데 괴안국(槐安國)에서 왔다는 두 관리가 잠을 깨웁니다. 순우분을 모시고 나무 속 구멍의 세계로 데려갑니다. 순우분을 보고 괴안국의 왕은 크게 반기며 부마로 삼게 됩니다. 순우분은 ‘남가군’이라는 곳을 다스리며 선정을 베풀고 지냅니다. 그렇게 평화롭게 몇십년이 흘러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던 부인이 죽고, 남가군은 이웃나라에서 침략을 당하는 힘든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평소 순우분을 시기질투하던 신하들이 패전의 이유를 추궁하고 왕에게 그를 내칠 것을 강요합니다. 왕은 순우분에게 그만 고향에 내려가 쉬는 것을 권유하자 순우분도 이를 받아들여 왕궁을 떠나자 갑자기 잠에서 깨고 그동안의 온갖 부귀영화와 고통, 모함이 한낮의 꿈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공좌가 쓴 소설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의 줄거리로 이 이야기에서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습니다. 순우분이 기대어 잠이 들어 지냈던 나무는 회화나무로 괴안국의 괴는 회화나무의 한자이며 남가국은 남쪽 가지에서 따온 말입니다. 회화나무와 그 아래 기어다니는 개미에서 이런 멋진 깨달음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모든 것이 나뭇가지에 걸린 꿈일지라도 꿈이 깨기 전까지는 매일 괴로워하든 즐거워하든 살아가야 하는 나날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요. ![]() ![]() 아래부터는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입니다. 세 명의 친구가 각자 다른 주제를 대상으로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먹는 얘기: 불안을 먹는 나날 여름방학동안 쉬며 에너지를 듬뿍 충전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이번 여름은 아무 일 없이 개인적으로 심란한 여름이었답니다. 은근히 몸은 이곳저곳 돌아가며 아픈데다 무기력까지 겹치고, 머리로는 걱정을 할 바엔 뭐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잔뜩하면서 불안해하는 밤도 꽤 있었답니다.
10년전쯤에 권투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제가 뭐든 설렁설렁 하는 편이라 권투를 제대로 한 적은 많지 않지만 무려 1년 넘게 등록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어쩌다보면 2주일에 한번 정도 글러브를 잡았답니다.
권투를 하게 된 동기는 되게 단순해요. 당시 출퇴근으로 750번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좀 막히는 퇴근길에 어쩌다 고개를 돌렸는데 2층 유리창에 사각링과 권투하는 사람들이 보이길래 영화 쉘위댄스의 샐러리맨 아저씨처럼 들어가서 등록을 하게 되었답니다. 전 그 아저씨처럼 완벽한 삶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낀 것도 아니였지만요.
기초체력이 없는 제가 권투는 힘든 운동이었답니다. 퇴근 후 권투장 가서 기본으로 줄넘기를 1분씩 3번 하는것만으로도 이미 지치기 일쑤랍니다. 마음같아선 이글이글 분노의 대상을 샌드백에 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확 풀릴것 같았지만 저질체력으로 내면의 분노가 체화하는 경험은 해보지 못했답니다. 마음속 분노를 표현 할 수 있는 것도 체력이 좋아야 한다는걸 깨달았답니다.
권투는 딱히 저랑 맞지 않았던 운동같긴한데 ,생각이 많이지는 요즘같은때 여전히 750번을 타고 지나면 너무 지쳐서 머리 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않던 권투장을 힐끔 쳐다보곤 한답니다. <어흥> TV보는 이야기 호랑이의 정원이 여름방학을 가지고 콘텐츠를 충전하고 있을때, 그런 어흥이를 메신저로만 응원해주고, 나는 칩거하며 일만 했다.
일빼고는 일 사이를 채울 끼니에 대한 생각만 하다보니, 내가 해결하고 싶은 방식으로 끼니를 준비하는 유튜버의 채널을 찾아보는게 사소한 낙이 되었다. 요새 빠져있는 채널 중 하나가 '하루하루문숙'이다. 몇 년 전부터 TVN 드라마를 통해 보이던 거친 흰머리를 곱게 묶은 어르신의 어색한 연기가 매력있어서 어디서 좀 길게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비건 자연식 채널로 유튜브에서 이렇게 많이 볼 수 있게 될 줄 몰랐다.
문숙의 요리는 엄청나게 단순해서 이걸 요리 채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당근을 갈아서 당근수프를 만들고, 아몬드를 갈아서 아몬드 우유를 만들고, 캐슈너츠를 갈아서 소스를 만들고, 콜리플라워를 갈아서 수프를 만든다. 뭐, 꼭 간것만 나오느냐 그건 아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샐러드로 진짜 간단한 음식만 만든다.
그런데 그 음식을 만들때 쓰는 재료를 이야기할 때 엄청 전문적인 느낌이 난다. 암염과 바다소금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열을 가해야 할때는 코코넛 오일같은 포화지방산을 사용하고, 견과류를 먹을 땐 껍질의 독성을 피하기 위해 불려서 껍질을 벗겨 사용한다. 토마토같이 독성이 있는 채소는 꼭 익혀먹도록 하고, 견과류 중에서도 많이 먹어도 문제 없는(아몬드, 호두) 것과 많이 먹으면 안되는(캐슈너츠) 걸 구분해서 먹어야 한다. 한 회 한 회 기술이나 손맛이라고는 필요하지 않은 요리를 뚝딱 해치우지만, 그 간단한 요리에 담긴 지식과 철학이 엄청나서 늘 입을 벌리고 보게 된다. 나 역시 혼자 집에서 이것저것 해먹다보면 쓰레기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고 먹었을 때 몸도 가벼운 채소와 콩을 가지고 식사를 준비할때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채소는 오히려 소화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차라리 기름기 가득한 탄수화물 인스턴트가 소화가 잘된다. 몸에 흡수될 수 있게 재료의 독성을 제거하고 기운을 북돋는 비건 자연식을 만드는 문숙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뭐, 그렇지만 실상은 저기 나온 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몬드는 직접 불려 갈아서 체에 쳐서 아몬드우유를 만드는 문숙을 보며 감탄한 후, 나는 아몬드브리즈 언스위트를 꺼내서 꿀꺽꿀꺽 마신다. 문숙은 레몬은 되도록 생레몬을 쓰고 안되면 유기농을 쓰라고 하지만, 우리집 냉장고엔 늘 피오디 레몬엑기스가 한가득이다. 그래도 계속 보면서 음식에 대한, 요리에 대한 욕망을 해소한다. 다이어터가 먹방을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먹방을 통해 학습되고 축척되는 욕망보다는 뭔가 건강한 욕망이 쌓여가는 기분이 든다. 이 욕망이 더 축적되서 발현되면, 나도 고기를 포기하고 비건이 될지도.<미돌> 기후위기와 가드닝 요즘 저의 큰 관심사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기후위기 극복 방법입니다. 많은 구독자 여러분들도 알고계시듯 한국의 탄소배출의 대부분은 산업과 에너지분야에서 차지하고 있고 이는 정치적으로 바뀌어야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양심에만 기대기에는 여전히 기후위기에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가드닝이 붐을 이루지만 해당 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탄소배출은 늘어난다고해요. 많은 사람들이 희귀 식물을 원하고 그 식물들은 배나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죠. 산지에서는 해당 식물을 키우기위해 막대한 전기와 물 그리고 토양개량제를 사용합니다. 가드닝에 필요한 피트모스는 피트랜드(Peatland)라 불리는 수만년동안 이끼가 쌓인 한랭지역 습지에서 채굴됩니다. 피트랜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탄소 흡수원인데 이를 채굴하면 할수록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면적이 사라지고 이를 채굴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흡수되었던 탄소가 다시 방출됩니다. 그래서 피트모스 판매업체에서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채굴했다고 홍보하기도 하지만 결국 화석연료와 같이 유한한 자원인 것이에요. 그런 생각들을 하면 대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하는 상념에 빠지곤합니다. 그래서 키우기 "쉬운 식물을 소개하고 오랫동안 키우자!"라는 것이 호랑이의 정원에 모토이기도 합니다. 모든 자원을 오래 쓰는 것이 탄소배출을 막을 수 있는 일이듯 식물도 똑같아요. 마음처럼 쉽진 않지만 지금있는 식물을 잘 키우고 오랫동안 같이 사는 것 그것이 모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가끔 생각합니다.<유정> * 기후위기와 가드닝에 대해 좀더 알고싶다면 아래의 기사를 참고해보세요. 후기🍀 어흥: 서울의 회화나무 지도를 매핑하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유정: 앗 알고보니 회화나무였잖아~ 라고 생각되는 12호였습니다. 호랑이의 쪽지 12호는 재밌게 읽어보셨나요? 독자 분들의 후기와 관심이 큰 힘이 됩니다. 💪 회화나무가 있는 곳엔 항상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그래서 사연없는 회화나무는 없는 것이겠죠? 호랑이의 쪽지 소개 동네의 식물탐험을 중심으로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쪽지형식이며 웹으로는 뉴스레터로 오프라인에서는 조그만 손바닥 책으로 발행됩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받아보던 쪽지처럼 별 내용이 없더라도 받아보는 순간에 살며시 지어지는 웃음처럼 삶에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호랑이의 정원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의 식물경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정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식물을 중심으로 환경과 마을을 연결하고 아카이브와 역사를 활용한 다양한 워크숍과 실험을 연구하고 진행합니다. 인스타그램: @tygertyger2020 tiger_garden@naver.com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 1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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