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정원 열다섯 번째 뉴스레터 2021.10.15 발행 안녕하세요 <호랑이의 정원>에서 발행하는 격주 뉴스레터 <호랑이의 쪽지 15호>입니다. 어느덧 쌀쌀해진 바람이 짧게 자른 제 목덜미를 스쳐가는군요.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추위를 많이 타는 저는 이미 기모스타킹과 내복으로 차가운 기온을 대비중이랍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우리 자신과 식물을 잘 가꾸어보아요.😉 이번 쪽지에는 잎이 어여쁜 마로니에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답니다. 글이 너무 길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짧게 쓰고 싶은데 하다보면 이것저것 횡설수설 많이 이야기하는 타입이네요 어흥...ㅋㅋㅋ 호랑이의 식물산책 마로니에 공원의 마로니에 이젠 대학로가 더이상 젊은이의 거리가 아닌것 같은 느낌이 들긴하지만 대학로에 가면 저의 젊은이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서 영원히 젊음의 거리인것 같은 느낌이 든답니다. ㅎㅎ 아직 백신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한낮에 마로니에 공원의 마로니에를 보러 대학로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들른 마로니에공원은 조금은 변한 모습이었지만 갈색 벽돌의 김수근 건축가의 건물과 담쟁이, 따뜻한 햇살, 나른한 기분은 그대로더군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은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이곳은 1926년부터 서울대학교가 있던 곳이랍니다. 정확히는 경성제국대학의 본관과 의학부, 법문학부가 있던 곳이였죠. 그래서 대학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마로니에 공원에서 그때의 석조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하고 난 뒤 ‘마로니에 광장’이라고 불리던 이 곳에 공원을 조성하고 1979년에는 마로니에 미술관(현, 아르코 미술관)을 세운 뒤 그때부터 마로니에 공원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마로니에는 경성제국대학시절 1926년 법문학부 교수인 미학자 우에노 나호테루 교수가 지중해에서 가져다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다른 자료에서는 1929년이라고 전해지기도 합니다.(최근 신문자료에는 1926년 4월 5일이라는 정확한 날짜까지 전해지는데,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네요. 참고로 일제시대 식목일은 4월 3일 ㅋㅋㅋ) 어쨌든 1920년대 말부터 마로니에는 쑥쑥 자라서 문리대의 상징이 됩니다. ![]() 1934년 개학 10주년을 맞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전경, 출처: 서울대 고문헌자료실 ![]() 1972년 서울대학생들과 하천정비 새마을운동중인 양택식 시장, 출처:서울특별시 마로니에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파리의 가로수로 잘 알려져있기도 했고, ‘마로니에'라는 예쁜 이름때문인지 이국적이고 젊은 문학도들이 그 나무밑에서 토론을 하거나 시를 쓰며 정취를 느끼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해요. 지금 보면 유치하기도 하지만, 당시 서울대생들은 지금은 복개된 대학로의 개천을 세느강, 조그만 다리는 미라보다리라고 불렀다고 해요. 미라보다리를 건너 보이는 마로니에 아래에는 벤치가 있었는데 데이트장소로도 사색의 장소로도 인기였다고 해요. 😘 ![]() 1965년 서울대 문리대 전경,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1975년에 발표된 서울대 문리대 이전 후 아파트 조감도 출처: 1975.3.12 매일경제 관악으로 서울대가 이전한 후 1975년 이곳은 대한주택공사가 중산층용 아파트가 지어 분양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어휴 😨 이때나 그때나 빈자리만 있으면 아파트라니… 이때는 아파트 붐의 시작점이기도 했구요. 30~40평대 1200가구로 평당 40만원에 분양가가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화아파트를 짓는다는 비난에 시달리자 결국 공원화를 결정합니다. 서울대가 떠난 뒤 지금과 같은 공원규모는 아니고 주변은 고급 주택이 들어서고 주택가 속 아주 조그만 공원이었다고 해요. 김수근 건축가가 공공공원으로 설계해 1982년에 개장합니다. 지금의 대학로의 상징이 되버린 붉은 벽돌의 미술관과 공연장이 이때 세워지게 되었답니다. 1993.05.09 경향신문, 1993.08.24 동아일보 마로니에 공원에 마로니에가 많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기사도 가끔 있는데요 서울대가 있던 시절에 마로니에 나무가 굉장히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이를 기려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름짓게 됩니다. 이름따라 마로니에가 잔뜩 있으면 더 좋을것 같긴해요 ㅋㅋ 학생들은 떠나갔지만 이 곳은 여전히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붉은 벽돌의 문예회관(현, 아르코극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작은 소극장이 모여들어 90년대부터 활발한 지금의 연극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전에는 명동예술극장이 중심이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극장은 명동근처 삼일로 극장이라고 합니다). 마로니에 공원은 도심속 공원이 잘 없던 당시에 젊은이들의 모임장소로도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연남동 경의선 숲길공원이나 서울숲공원 같은 것일까요? 어르신들이 탑골공원에 모이듯 결국 저마다의 세대가 공유하는 공원은 따로 있는걸까요? ㅋㅋㅋ) 최근 버스킹이라고 불리는 노상공연도 대학로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활발해서 1985년에는 176회, 1986년에는 216회나 됐다고 하더군요. 2000년대 초에 마로니에 공원에 가면 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최근 암 투병중이라는 기사를 보았어요. ㅠㅠ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둥글게 엄청 모여들었는데 이제는 텅빈 자리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 출처: 2005년 씨네 21 ![]() 현 아르코예술극장 앞 제 기억속의 마로니에 공원과 최근의 마로니에 공원은 조금 차이가 있답니다. 예전에는 배드민턴을 빌려주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밤이면 술이든 흥이든 취한 사람들이 그걸 빌려 배드민턴을 치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답니다. 힙합바지를 끌며 젊음을 낭비하던 저와 제친구는 밤새 놀다 공원 벤치에 앉아 새벽 첫차를 기다리며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을 바라보기도하고 커피 자판기에 커피를 뽑아 두런두런 나무밑에서 온갖 세상의 고독함을 다 껴 앉은듯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헤헷 지금은 없어진 샘터 사옥내 자바커피(현, 스타벅스 자리)에서 당시 최신식 생크림 모카커피를 마시며 타워레코드 폐업전에 세일하는 씨디를 사러가자며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과 정모를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합니다. (아... 이렇게 회상씬이 많아지면 나이든거라던데..훌쩍) 2013년에 리모델링 된 마로니에 공원은 그때의 흔적은 사라지고, 무장애 공간 공연장이 새로 조성되었더라구요. 새로 마로니에 공원을 담당한 건축사의 설명에 의하면 ‘온갖 욕망의 잔해들이 누적되며 서로 충돌하는 기능들, 시설들, 조형물들이 쌓여지기만’ 한 공간을 정리하고 공공역역을 확장시켰다고 합니다. (흑흑 욕망의 잔해로 묘사되는 나의 추억들~) ![]() 무장애 공연장 앞 마로니에 ![]() 아르코 미술관 앞 마로니에의 무성한 잎 ~ 마로니에 공원관련 TMI ~ 1925년부터 문리대 앞에 있던 중국집 진아춘(현재도 운영중)에서는 당시 대학생들이 시계를 맡기고 외상으로 밥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1996년에 진아춘 주인은 20년이 넘도록 찾아가지 않았던 시계 54점을 서울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60년이 지났을뿐인” 학림다방은 미라보 다리를 건너편에 1956년에 문을 열어 대학생, 문화예술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현재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1998년에 공원내 마로니에는 상을 받은것으로도 유명한데요, 70년간 시민의 벗이자 젊은날의 꿈을 키워준 나무의 공덕을 기려 한 단체에서 상을 주기도 하였답니다. 상금 100만원은 마로니에 관리비로 쓰였다고 하네요. ![]() 진아춘 기증 시계, 출처: 서울신문 ![]() 학림다방에서 바라본 민주화시위, 1990년대, 출처: 이충열(학림다방 주인) 마로니에 공원 접근성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도보1분 거리 버스: 혜화역, 서울대병원입구 도보 1분 거리 휠체어, 유아차 접근가능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 일부구간 있음 마로니에(marronnier)는 우리말로는 가시칠엽수(Aesculus hippocastanum) 라고 합니다. 마로니에는 가시칠엽수를 일컫는 프랑스 말이랍니다. 일본칠엽수와 구분하기 위해 서양칠엽수라고도 하는데요, 왜냐면 이 둘은 정말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일단 칠엽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잎은 7개이며 손가락을 쫙 펼친 형태처럼 가운데 난 잎이 가장 크고 주변으로 갈수록 작아집니다. 이세이미야케 플리츠 디자인이 생각나는 촘촘한 주름잎이 특징이랍니다. 일본칠엽수와 가시칠엽수를 구분하는 여러방법중 제일 쉬운 방법은 가을철 열매의 모양을 보면 됩니다. 가시칠엽수는 열매에 뾰족뾰족 가시가 있고, 일본칠엽수는 그냥 맨들맨들 호두같이 생겼답니다. 그래서 두둥! 사실 위에 길게 언급했던 대학로의 마로니에는 마로니에가 아닌 일본칠엽수랍니다. (새로 심어놓은 서양칠엽수들이 있긴하지만요) 다 같은 칠엽수이기도 해서 일반적으로 마로니에로 통칭하곤 한답니다. 식물분류학자들은 괴롭겠지만 이제와서 일본칠엽수 공원으로 할 순 없잖아요 ㅋㅋ 마로니에는 마론[밤]같이 생긴 열매가 열리는데요, 확인할 수 없는 도시전설에 의하면 대학로에서 이 밤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갔다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정말 동글동글 잘 여문 밤같이 생긴데다가 껍질을 까보면 밤과 똑닮은 토실한 하얀 부분이 어떻게든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독성때문에 설사, 구토 등 위장장애를 일으킨다고 하네요. 마로니에는 또 다른 말로는 말밤나무, 영어로는 horse chestnut 으로 불립니다. 아픈 말을 치료할때 먹었다는 옛 이야기에서 전해진 명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말에게 먹여서는 안되겠죠? 열매의 추출물은 약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 일본칠엽수 열매 ![]() 뽀족뽀족한 가시칠엽수 열매 이곳저곳의 마로니에를 찾아서 1. 덕수궁 마로니에 마로니에 공원의 마로니에가 사실 마로니에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로니에 나무가 어디있을까요? 의외의 곳인 덕수궁에 있답니다. 덕수궁의 마로니에가 심어진 시기에 대해 인터넷의 자료들이 그렇듯이 여러가지 설들이 있는데 대강 추려보면 1912년, 1913년, 1920년 등 20세기 초에 심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은 고종의 환갑잔치에 네덜란드 공사가 보낸 선물이라는 것인데요. 고종의 환갑은 원래 1912년이었으나 잔치는 1년 늦게 치뤄진 1913년이어서 혼동이 있던것 같아요. 구전말고 이 네덜란드 선물 썰을 뒷받침 할 자료는 아직 보이진 않지만 문화재청에서 발행된 <덕수궁 조경정비 기본계획>에 의하면 석조전 정원이 완성된 것은 1910년대 초반이며 너도밤나무, 감탕나무, 산법나무 등과 함께 칠엽수를 수입하여 심었다는 <덕수궁사>기록을 보아 1910~1920년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이제까지 밝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로니에 나무랍니다. ![]() 덕수궁 1936년 도면, 출처: 문화재청 ![]() 덕수궁 마로니에 2. 안네프랑크의 마로니에 안네의 일기를 읽은 것은 언제였나요? 저는 중학년때 읽었던것 같은데 어릴때라 전쟁의 참혹함보다 책장 뒤에 숨겨놓은 은신처에 흥미를 가졌던 철없던 소녀였답니다. ㅠㅠ 그렇지만 일기를 읽는 내내 먹먹하고 답답한 알 수 없는 무거움이 있던 기억이 납니다. 안네의 키티 일기장에 영향을 받아 중고등학생때 저도 일기장에 이름을 짓고, 힘들때면 일기를 쓰곤 했답니다. “폐 속의 답답한 공기를 날려 보내고 싶어서, 나는 거의 매일 아침 다락방으로 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서 푸른 하늘과 벌거벗은 밤나무를 올려다 본다. 밤나무의 가지에 맺힌 빗방울이 은빛으로 반짝이고 갈매기와 새들은 바람 위로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 이것들이 존재하는 한, 난 아마 살아남아서 이걸 볼 수 있을 것이고, 이것들이 있는 한, 나는 불행할 수 없다.” 꿈많던 사춘기 소녀 안네가 좋아하는 자리에서 본 밤나무는 마로니에 나무랍니다. 안타깝게도 안네는 밖에 나와 이 나무밑의 풍성한 그늘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네요 ㅠㅠ 마로니에의 수명이 150년이 넘어가면서 대부분이 썩게되자 200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당국 제거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게 됩니다. 곧 이 나무가 철거된다는 사실에 약싹빠른 누군가 열매를 주워 경매에 팔기도 했지만 나무를 철거하기보다는 살려야한다는 많은 시민들의 의견을 따라 철제지지대를 설치해 다시 살렸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2010년 폭풍이 세게 불어 나무가 부러지고 생을 마쳤습니다. 3. 프랑스의 마로니에 프랑스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는 개선문, 유서깊은 고급 패션브랜드 매장 등 화려하고 다양한 것들로 유명하지만 그 직선의 거리를 돋보이게 만든 1등공신은 가로수가 아닐까 합니다. 초기에는 심은 라임과 느릅부터,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까지 시대에 따라 층층히 심어져있다고하네요. 우리나라 옛 신문기사를 보면 일제강점기때부터 마로니에나무와 세느강이 대표적인 프랑스 이미지였던것 같아요. 지금은 각지게 나뭇잎 수형을 자른 플라타너스가 샹젤리제 거리를 한껏 뽐내고 있어서 마로니에가 돋보이지 않는것 같지만요. 최근 파리시는 이 도로를 막고 전체를 정원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 1900년대 샹젤리제 산책로의 마로니에 출처: www.pca-stream.com 에서 인용(ⒸNerudein/ Roger-Villet)![]() 2021년 9월 16일부터 10월 3일까지 전시된 christo & jeanne claud의 개선문 작품과 상젤리제 거리 출처: www.euronews.com 4. 영국의 마로니에 영국의 정원과 공원에도 마로니에가 꽤 유행했다고 하네요. 제임스 티소가 영국에 있을때 그린 당시 귀족들의 일상 그림을 보면 곳곳에 마로니에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답니다. 특히 10월(October)은 요즘 인스타그램 사진같지 않나요? 역광에 반짝이는 마로니에 낙엽으로 가득찬 화면과 뒤돌아선 포즈까지! James Tissot, Holyday, 1876년경 출처:테이트 미술관 James Tissot, October, 1877년 출처: 몬트리올 미술관 런던 부쉬파크는 왕립공원중에 두번째로 크다고 하는데요. 수로, 정원, 붉은 사슴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헤헤 안가봐서 공식 홈페이지 설명) 17세기 말 이 공원을 리모델링한 크리스토퍼 렌경은 햄프튼 코트에서 테딩턴까지 이어지는 체스트넛 거리에 마로니에를 심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매년 5월이면 마로니에 꽃을 보러 이 산책로를 걸었다고 하네요.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체스트넛 선데이라는 행사가 있다고해요. 마로니에 꽃이 가장 아름다운 5월의 일요일에 열린다고해요. ![]() 체스트넛 선데이 포스터 1931, 출처:Teddington Town ![]() 체스트넛 선데이 포스터 2011, 출처:Teddington Town 아래부터는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입니다. 란과생활: 이어진다는 것 전에도 밝혔듯이 언젠가부터 식물에 과몰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고 하네요. 제 친구는 선물받은 몬스테라에게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적이 있어요. 새로난 몬스테라잎 새 줄기에는 조그맣게 다음 싹부분이 있잖아요. 본인은 하루하루 직장생활에 찌들어가는데, 척척 맡을 일 잘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잘난 회사동료를 보는 심정이라고 했던가요? 하하 가을 산책을 다니다보면 결실을 맺은 식물들이 개미든, 사람이든, 바람이든 온갖 수단을 이용해 씨를 퍼트리도록 진화된 것을 보면 이어진다는 것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고개숙여 보고 있는 고사리는 그 오랜 세월을 포자로 번식해서 여기까지 온걸까요? 결국 이렇게 자손을 퍼트리는 것이 생물의 최종 운명인걸까요?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저는 그렇다면 어떻게 다음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뭘 이으려고 한 적은 없지만 이대로 끝인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저의 수명이 다하면 길게 이어져 온 저의 유전형질은 비로소 지구상에 사라지겠지만 그동안 지구든 사회든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정신은 질경이 씨앗처럼 어딘가 신발에 붙어서 흩어지며 이어질 수 있을까요? 길가의 잡초를 보며 우두두 씨앗을 멀리멀리 털어봅니다. <어흥> 식물산책에서 만난 붉나무 식물산책을 가면 자주 만나는 나무 중 하나가 붉나무입니다. 날개가 있는 독특한 잎모양을 가진 식물로 가을이면 매우 붉게 단풍이 든다고 붉나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 나무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면 두가지 정보가 눈길을 끄는데요 하나는 열매에 관한 이야기로 붉나무의 열매껍질에서는 소금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산에서 나는 소금이죠. 나트륨이 들어있는 소금이 아닌 소금과 유사한 맛이 나는 사과산칼슘으로 이 가루로 최고급두부를 만들수 있다고 해요. 두번째는 붉나무에 기생하며 사는 진딧물이 만든 오배자입니다. 이 오배자는 염료를 만들거나 약재로 쓴다고 하는데요 모양과 색이 아름다워 마치 붉나무 열매같이 생겼지만 실은 진딧물의 집이랍니다. 오배자면충이라 불리는 벌레는 이끼류에서 월동을 하다가 봄이 되면 붉나무에 알을 낳고 이 알에서 깨어난 벌레가 붉나무에 오배자를 만들어 그 안에서 몇 세대를 거친다고 해요. 그리고 가을이 되면 오배자의 열린 틈 밖으로 나와 다시 이끼로 돌아가서 월동합니다. 한동안 오배자안에서 세대를 거치며 태어나는 진딧물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4세대쯤 거친다고 하면 1-3세대까지는 영영 바깥세상과 인연이 없는게 아닌지, 오배자속 진딧물의 시점으로 본다면 가을이 온다는건 어느날 조명이 하늘에서 떨어져 당황스러운 트루먼과 같은 상황이 아닌지 여러모로 진딧물에 감정이입해 보았습니다. 그나저나 진딧물은 특정시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암컷으로 번식한다는 사실 알고계셨나요? ![]() 붉나무 열매 출처: 산림청 ![]() 붉나무의 오배자 출처: 국가 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 후기🍀 미돌: 미돌은 당분간 충전을 위해 연재를 쉽니다. 넷플릭스, 유튜브보다 내면의 볼륨을 높이려구요(잘될까) 어흥: 갈수록 쓰다보면 온갖 트리비아 투성이가 되버리는 호랑이의 쪽지. 다행히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노래 이야기까지는 쓰지 않았답니다.
유정: 칠엽수의 잎은 너무 아름다워요. 여름내내 칠엽수의 커다란 잎을 보는게 좋았는데 이제 가을이네요ㅠㅠ 호랑이의 쪽지 15호는 재밌게 읽어보셨나요? 독자 분들의 후기와 관심이 큰 힘이 됩니다. 💪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모든 글을 관통하고 있는 시간의 계층이랍니다. 나무는 다 지켜보고있다! 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데요 일제강점기를 거쳐 서울대 학생들의 추억이 되었다가 공원으로 바뀌며 연극의 중심지로, 또는 기다림의 장소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이 인상깊었어요. 어떤 시대에 가더라도 마로니에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길을 헤매지 않을거 같아요. 호랑이의 쪽지 소개 동네의 식물탐험을 중심으로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쪽지형식이며 웹으로는 뉴스레터로 오프라인에서는 조그만 손바닥 책으로 발행됩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받아보던 쪽지처럼 별 내용이 없더라도 받아보는 순간에 살며시 지어지는 웃음처럼 삶에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호랑이의 정원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의 식물경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정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식물을 중심으로 환경과 마을을 연결하고 아카이브와 역사를 활용한 다양한 워크숍과 실험을 연구하고 진행합니다. 인스타그램: @tygertyger2020 tiger_garden@naver.com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 120-12 |
호랑이의 정원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