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정원 여섯번째 뉴스레터 2021.04.30 발행 안녕하세요 <호랑이의 정원>에서 발행하는 격주 뉴스레터 <호랑이의 쪽지 6호>입니다. 이번 쪽지에서는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너무 많아서 은행잎이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에 한번 더 담기로 했습니다. 성균관의 은행나무와 함께 가을에 다시 만나요~ 호랑이의 식물산책 행촌동 딜쿠샤 옆 은행나무 지난 호에 소개한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10분정도 더 걸어가면 딜쿠샤와 은행나무가 나옵니다. 이곳 종로구 행촌동(杏村洞)의 옛지명은 은행나무가 있던 동네라는 뜻의 은행동과 신촌동이 합쳐진 지명입니다. 과거에 이곳은 권율(1537-1599) 장군 집터였다고 해요. 은행나무 수령이 대략 460년쯤 되어서 권율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사실인지 전설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랜 시간 마을의 수호신처럼 듬직하게 은행나무는 자라고 있답니다. ![]() 지금보다 풍성해보이는 은행나무, 1920년대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행촌동 은행나무 전경, 2021년 (인왕산쪽을 바라보는 방향) 은행나무 바로 옆에는 최근에 복원한 딜쿠샤를 보러 골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은근히 찾기 어려운 곳에 있거든요. 아파트로 둘러 쌓인 도심가 경사면을 걷다보면 골목사이에 숨겨놓은 것처럼 은행나무와 딜쿠샤를 볼 수 있습니다. 딜쿠샤는 3.1운동을 해외에 알린 AP통신사 특파원이었던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에 지은 집으로 딜쿠샤는 산스크리스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입니다. 딜쿠샤는 굉장히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랍니다. (약간..아니 많이 식민지 시대에 이국에서 풍요로운 서양인의 일과 thㅏ랑...그런 느낌이긴한데 ㅋㅋㅋ) 사랑이 담긴 붉은 벽돌집, 딜쿠샤 딜쿠샤와 은행나무, 1920년대 (안산쪽으로 바라보는 방향) 조선에 사는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는 출장으로 일본에 가는데 그곳에서 연극 공연중인 영국인 메리 테일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메리는 인도로 돌아가야했고 앨버트는 조선으로 떠나기전에 메리에서 호박목걸이를 선물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그 후 다시 인도에서 만나 결혼을 한 뒤 조선에서 살게 됩니다. 딜쿠샤라는 이름은 인도의 궁전이름에서 따왔다고 해요. 테일러 부부가 1923년 딜쿠샤를 짓게 되었을때 마을 사람들의 항의와 무당의 저주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은행나무와 샘골이 있던 신성한 땅에 외국인이 집을 짓는다고 하니 거부감이 컸겠죠. 정초석에는 집 이름인 딜쿠샤 DILKUSAH 1923 와 함께 PSALM CXXⅦ. I (시편 127편. 1절) 이 함께 음각되어있는데, 기독교인이었던 부부는 신의 뜻으로 잘 완공된것을 감사하며 새겨넣었다고 해요. ![]() 딜쿠샤 정초석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 낙뇌를 맞아 불탄 딜쿠샤 전경, 1926년 사진출처: 매일신보,1926년 7월27일 1919년 지금의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테일러 부부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아들의 침대밑에 종이를 숨겨놨는데 이것이 3.1독립선언서인 것을 본 뒤, 독립선언서와 기사를 미국으로 보내 3.1운동을 세계에 알리게 됩니다. 1941년 추방당한 테일러 부부는 늘 이 집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1948년 앨버트 테일러가 죽자 유언에 따라 양화진 선교사 무덤에 묻혔고 메리 테일러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점차 기억속에 이 집은 잊혀지고, 주인이 없는 집은 한국전쟁 이후 무단점거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니스트 베델(대한매일신보 창간인) 의 집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었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어요. 이곳에서 태어난 아들이 2000년대 중반에 이 집을 찾아오기 전까지요. 사람들이 쌓아놓은 장독 사이로 숨겨진 표지석을 찾아 이제는 아흔살에 가까운 아들이 집을 다시 방문했으며 관련 유물을 기증하였습니다. 거주 당시 집의 내,외부 사진도 가지고 있어서 당시 테일러 부부가 살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해요. 예약이 늘 꽉 차있어서 아직 내부 전시장을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보도자료로 공개된 내부 모습이나 겉에서 보는 외부 모습을 보면 너무 만들어진 세트장 같은 모습에 좀 당황스럽기는 합니다. 아마 기존 건물이 위험하므로 건축법상 문제가 없도록 새벽돌이나 구조를 보강하여 새로 지은것 같아요. ![]() 복원전 전경, 2017 사진출처: 문화재청 ![]() 복원후 전경, 2021 💌 호랑이의 쪽지: 약간 문화해설사 같은 느낌이...머쓱 딜쿠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서울역사박물관, 2018> , <호박목걸이(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2014> 책을 보시면 알 수 있답니다. 원래 행촌동의 은행나무는 꽃이 피지않는 3월 초 거대한 나무가지를 감상하는 묘미를 담으려고 기획되었으나...기후변화로 온갖 꽃들이 만개하는 바람에 4월 말로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담을 수 있었네요. 가을이 오면 이곳은 더 아름다운 명소가 되겠지만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푸르른 은행잎은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은행나무가 견딘 500년의 시간, 그리운 옛 가족을 기다린 딜쿠샤의 시간, 그리고 그 사이를 거쳐간 수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반투명하게 겹쳐보면 어쩐지 애달프고 슬퍼지기도 한답니다. ![]() 3월의 은행나무 ![]() 4월의 은행나무 행촌동 딜쿠샤와 은행나무 접근성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1번출구에서 도보 13분 버스: 독립문역.한성과학고(중) 정류장에서 도보 13분 휠체어⠂유모차 일부접근 가능(급경사) 시각장애인 점자블록 없음 호랑이의 정원에서 도보 20분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 ![]() 은행나무는 학창시절 배운 문,강,목,과,속 모두 은행나무 하나밖에 없는 나무입니다.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기도 하는데요, 지구상에 은행나무가 나타난 것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3억 5000만년전 고생대 석탄기로 잡기도 하더라구요. 지금이랑 조금 종이 다르고 그때의 종은 멸망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은행나무 종으로도 1억년 이상(학자에 따라 2억년 이상) 지구에서 살아왔습니다. 워싱턴 주 페리 카운티에 있는 에오세 지질층의 은행 나무 잎 (에오세, 약 4 천 9 백만년전). 출처: Stonerose Interpretive Center Collection / Kevmin 가로수로 흔히 보는 나무이기도 해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뽑으면 1-2위를 할 정도로 친근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은행나무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정한 멸종위기종이라는것 혹시 알고 계신가요? 은행나무는 1종류밖에 없는데다, 사람들이 심지 않으면 야생에서 스스로 자라기 힘들다고 해요. 현재 알려진 은행나무 자생지는 세계에서 중국에 2군데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심는 것이 유일한 매개체로 알려져 있는 은행나무이지만, 왠지 인류가 없어지고 다른 생명체가 사는 시대가 와도 그 생명체를 이용해서 은행나무는 계속 잘 살아있을것만 같습니다. 멸종위기종이기는 하지만 은행나무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천년이 넘거나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많은 편이여서 다양한 전설과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기말적 감성과 더불어 전생개념이 유행했던 1996년에 <은행나무 침대>라는 영화가 히트한적이 있었는데요 (앜ㅋㅋㅋ 내 나이…) 오래된 은행나무를 올려다 보면 그 웅장함과 세월에 왜 은행나무를 소재로 전생의 이야기가 쓰여졌는지 짐작이 갑니다. 모든걸 다 지켜보고 이해하는 느낌이랄까요? 옛부터 나무가 주연료로 쓰이던 시절에도 땔감으로 쓰이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인거잖아요. 우리나라에는 천년이 넘는 은행나무는 5그루이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도 23건으로 소나무에 이어 두번째로 지정이 많이 된 나무입니다. 어디든 둘러보면 멋진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이랍니다. 혹시 호랑이의 정원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은행나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 중국 산시성 시안, 1400년된 은행나무 사진출처: 나우뉴스, 2015.11.24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 1,100살 추정 사진출처: 문화재청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 1,100살 추정 사진출처: 문화재청 ![]() <은행나무 침대> 포스터 사진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천년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 요약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마의태자가 나라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에 가던길에 심었다. -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곳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 일본군이 불을 질러도 타지 않았다. - 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 소리내며 운다.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 나라에 변고가 있을때 소리내며 운다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 나무 속에 신통한 뱀이 살아서 동물이나 곤충이 접근을 하지 않는다. - 어린아이들이 나무에 떨어져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 큰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준다. - 나무가지가 바람으로 부러졌는데 3년동안 마을의 밥상과 37개의 관을 만들 정도의 크기였다. - 머리가 둔한 아이를 밤중에 이 나무밑에 한시간 세워놓으면 머리가 좋아진다.(ㅠㅠ)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 소리내어 운다 💌 호랑이의 쪽지: 이쯤되면 천년 은행나무에 소리나 진동수집기를 설치해서 <나라의 큰일 알림이>앱을 만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가 우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고요한 마당에 나뭇잎이 툭 떨어지는 소리? 나무 둥치가 흔들리면서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는 소리일까요?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로 나눠있어요. 가지가 위로 뻗으면 수나무, 옆으로 뻗으면 암나무입니다. 봄에 피는 꽃으로도 구분이 가능한데요 뭔가 다글다글 모여있는 바다포도같은 꽃이 핀다면 수나무입니다. 은행이 매달린 나무 근처를 살펴보면 어디엔가 수나무를 찾아볼 수 있답니다. 가을이면 보도에 떨어지는 은행냄새에 시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요즘은 유전자 검사로 미리 암수를 구별하여 수나무만 심는다고 해요. 각 지자체마다 은행나무 열매가 보도에 떨어지는 것을 다양한 방법을 모색중이랍니다. 각자 좋은 의견이 있으면 지자체 리빙랩에 도전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호랑이의 쪽지: 은행을 오독오독 밟는 재미에 정신없이 밟았다가 신발에 나는 냄새에 후회한 사람….ㅠㅜ ![]() 은행나무 수나무에 피는 꽃. (행촌동 은행나무는 수나무에요.) ![]() 수원시의 은행수집망, 출처: 서울신문, 2019.10.29 은행나무를 심은 사람의 마음 가로수길은 어디에 가나 많지만 ‘가로수길’ 하면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로수길의 가로수는 은행나무랍니다. 신사동 가로수길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를 당시 그땐 저도 젊은이였는데요 하하..사실 가로수길의 가로수가 은행나무였는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요. ㅠㅠ 강남의 도로체계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대로에는 가로수를 심지만, 가로수길같은 소로에는 가로수를 심지 않는다고해요. 신사동 가로수길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은 독특한 상점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로수였던거죠. 이 가로수길의 은행나무를 강남구 지자체도 환경단체도 아닌 어떤 한 개인이 심은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답니다. 가로수길은 1970년대에 신사동에 살던 한 분이 뜻을 가지고 사비를 들여 그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신사동의 길에 매일매일 100그루가 넘는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사라지고 가로수길의 명성도 예전같진 않지만 노랗게 은행잎이 물든 가을에 신사동 가로수길을 들를때면 시시각각 변해가는 개발의 시대에서 은행나무를 묵묵히 심던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 떠올릴 것 같습니다. * 은행나무를 심던 아저씨를 기억하는 관련 신문기사 (경향신문, 2016년 10월 5일 기사) ![]() 1970년대에 가로수길에 은행나무를 심은 사람에 관한 구술 사진출처: <강남 이야기로 보다> , 서울역사박물관, 2008 ![]() 일자로 쭉 뻗은 가로와 은행나무를 따라 걷는 재미가 있는 가로수길 사진출처: 서울관광재단 💌 호랑이의 쪽지: 가로수길의 자매품?으로 세로수길 그리고 봉천동의 샤로수길이 있답니다… 2000년대 초 신사동 가수길은 강남 특유의 블록형으로 구획된 도로와 보도를 걸으며, 아기자기한 옷가게와 이전에는 없던 독특한 매력의 맛집과 커피숍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답니다. 입구에 있던 스쿨푸드의 맛나고 조그마한 김밥, 정든집의 오뎅, 가을 바람맞으면 밤에 커피숍 테라스에서 마시던 카푸치노... (이제는 나이들어서 밤에 커피못마신다는 ㅠㅠ) 이제는 그리운 가로수길에서의 청춘과 추억의 시간입니다. 아래부터는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입니다. 세 명의 친구가 각자 다른 주제를 대상으로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안) 먹는 얘기 트위터에서 본 내용인데요. 아버지가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라고 가르치면서 그 이유를 여자가 조신하게 젓가락질을 할 줄 알아야한다거나, 그래야 어른들에게 이쁨을 받는다가 아니라 세상에는 젓가락질 말고도 너에게 참견하고 싶은 사람이 널려있다. 그러니 젓가락질로 틈을 줘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는데요. (출처를 찾아보는데 찾을수가 없네요...이런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김치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구내식당의 경우 대부분 본인이 먹을 반찬을 덜어먹는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반찬이든 밥이든 남기는걸 싫어합니다. 딱 적당량 덜어와서 가져온 모든 것이 싹싹 비워지는 걸 보면 희열을 느끼는 타입이에요. 김치를 싫어하는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기때문에 딱 한 입정도 먹고 싶을때 딱 한개만 덜어오면 그때부터 맞은편 어른의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김치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안먹냐. 어흥씨가 보면 쌀밥도 잘 안먹고 빵이나 과자만 먹더라. 어흥씨 때문에 우리나라 양곡소비량이 줄고 있다. 한국인이 한식을 먹어야 몸에 좋다. 한식을 먹어야 살이 빠진다. 어릴때 식습관이 뭐가 잘못된게 아니냐. 나이가 몇인데 당근은 왜 골라놓냐…(진짜 웃기라고 지어낸 말 아니고 다 직접 들은 말이에요 흑흑) 그러면 전 또 굳이 상대방이 알필요가 없는 생김치는 안좋아하지만 김치볶음밥은 좋아한다라던가, 밥과국이 있는 백반류는 안좋아하지만 한그릇 음식은 좋아한다 등으로 어필해보지만 안먹는 무언가가 있다는것만으로 애기입맛을 가진 편식쟁이로 취급받습니다. 저는 지금은 닭발을 좋아하지만 닭발을 못 먹었던 시절도 있어서 닭발못먹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가지를 못먹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는데 왜 세상은 누구나 뭐든 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어흥) TV보는 이야기: 영화 미나리 일 년 넘게 가지 않았던 영화관을 찾아 미나리를 봤다. 마스크 빼고 밥은 가끔 밖에서 먹지만, 마스크 낀 채로 영화관 간 건 손에 꼽는다. 원래 밥먹는 만치 자주 가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폐쇄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여하튼 마스크는 건드리지 않고 조심히 잘 보고 돌아왔다. 미나리에서는 갑자기 농사를 짓기 위해 대도시에서 미국 시골로 온 스티븐연이 꾸역꾸역 어떻게든 농사를 지어낸다. 농지에 물을 대고, 물값에 벌벌 떨고, 다 키운 농작물을 거래할 곳을 찾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스티븐 연의 모습을 보며 생업의 무거움을 절절하게 느꼈다. 요새 생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어떤 장면 앞에서도 감정이입하는 시기라서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서 지켜봤다. 마나리는 1980년대 미국 이민 가족의 개척기를 서정적으로 다룬 영화다. 병아리 감별도 엄청 잘하면서 꿈을 버리지 못해 농작물을 키우는 남편과, 가족의 안정과 안전보다 꿈이 먼저인 남편이 야속한 아내 사이의 갈등도 볼이 통통한 아이의 시선으로 올려다봐서 그런지 무척 서정적으로 느껴졌다. 그 서정적인 감성에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건 맞지만, 미나리 자체는 완벽한 미국 영화(라고 생각했)다. 여러 인종이 개척해나가며 만들어가는 나라가 미국이고, 1980년대 알콘소는 한국인이 삽을 들고 개척한 땅도 있었다. 자신의 종족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수민족 또한 미국의 다양성을 이루는 한 부분일테고. 오늘(4월 27일) 엠비씨 뉴스데스크에서 BTS와 기생충과 미나리를 다 묶어서 한국 콘텐츠의 힘을 이야기하는데, BTS는 초국가적인 엘프지만 그 성공에 이르게 한 그들의 그릿(grit)과 자본구조는 확실히 한국적이고, 기생충은 확실히 주제의식이나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완전 한국적인데, 미나리까지, 으음? 하다가도 미나리로 여러 종류 뉴스 만들기도 힘들겠다고 생업의 어려움에만 살짝 또 공감했다.(미돌) 우리끼리 가끔 하는 말이지만 ![]() 과거로 돌아간다면 (물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겠지만) 전공과목에 기대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자.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합니다. 때는 2013년. 미술도 식물도 모르는, 사진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 저는 오래 산 나무를 찍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그 폴더를 열어보지 않았는데요 이번 뉴스레터를 계기로 다시 꺼내보니 엇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겠다라는 착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별로였는데 말이죠. 지금까지 계속했다면 엄청난 민속자료가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시작할 마음도 없는데 과거는 어쩌면 과거라서 소중한걸까요? 그렇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하고 있는 다른 일들은 언제부터 소중해지는 걸까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유정) 사진: 금산 요광리 천년 은행나무 후기🍀 어흥: 여러가지 생각에 뒤숭숭한 잠자리를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렇지만 신나는 5월이 곧 다가오니 심란한 마음속에서도 들뜨는 중이에요.
유정: 이번 주말에는 은행나무침대를 다시 봐야겠어요 ㅎㅎ 호랑이의 쪽지 6호는 재밌게 읽어보셨나요? 독자 분들의 후기와 관심이 큰 힘이 됩니다.💕 은행나무와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호랑이의 쪽지 소개 동네의 식물탐험을 중심으로 호랑이의 친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생각을 담은 쪽지형식이며 웹으로는 뉴스레터로 오프라인에서는 조그만 손바닥 책으로 발행됩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받아보던 쪽지처럼 별 내용이 없더라도 받아보는 순간에 살며시 지어지는 웃음처럼 삶에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호랑이의 정원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방법의 식물경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정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식물을 중심으로 환경과 마을을 연결하고 아카이브와 역사를 활용한 다양한 워크숍과 실험을 연구하고 진행합니다. 인스타그램: @tygertyger2020 tiger_garden@naver.com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 1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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